과달카날 전역
태평양 전쟁의 전투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과달카날 전역(영어: Guadalcanal campaign)은 1942년 8월 7일부터 1943년 2월 9일까지 과달카날섬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의 일환으로 진행된 태평양 전구의 전역이다. 일본 제국에 대한 연합군의 첫 번째 대규모 공세였다.
과달카날 전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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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의 일부 | |||||||
과달카날 해전 동안 미국 해병대가 들판에서 휴식을 취하고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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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통가[1] 솔로몬 제도[2] 피지 식민지[3] | 일본 제국 | ||||||
지휘관 | |||||||
로버트 고믈리 윌리엄 홀시 알렉산더 밴더그리프트 알렉산더 패치 리치먼드 K. 터너 |
야마모토 이소로쿠 † 쓰카하라 니시조 구사카 준이치 이마무라 히토시 히야쿠데 다루키치 고토 아리토모† 이치키 기요나오† | ||||||
병력 | |||||||
60,000여 명 (지상군) | 36,000여 명 (지상군) | ||||||
1942년 8월 7일, 연합군 상륙 부대의 툴라기, 과달카날에 대한 행로. |
1942년 8월 7일에 주로 미군으로 구성된 연합군은 솔로몬 제도 남부의 과달카날, 툴라기, 플로리다에 상륙한다. 이곳은 미국과 오스크레일리아, 뉴질랜드 사이의 병참선 및 통신선을 위협하는 일본군의 전진기지가 위치한 곳이었다. 또한 연합군은 과달카날과 툴라기를 뉴브리튼(New Britain)에 위치한 라바울의 일본군 주요 기지 공격을 위한 전진기지로 사용하고자 하였다. 연합군은 숫적 우위를 바탕으로 1942년 5월부터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제압하였으며, 과달카날에 건설되고 있던 일본군 비행장을 확보하였다. 이 비행장은 차후에 핸더슨 비행장으로 명명된다.
연합군의 공격에 놀란 일본군은 핸더슨 비행장을 되찾기 위하여 1942년 8월부터 11월 사이에 수차례에 걸쳐 시도한다. 3번의 육지에서의 교전과 5번의 야간 수상교전, 2번의 항공모함 교전이 이어졌으며, 거의 매일 항공작전이 이어졌다. 1942년 11월 초에 일본군은 과달카날 해전으로 일컬어지는 핸더슨 비행장에 대한 대규모 공중/해상 폭격과 육상 공격을 시도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일본군은 1942년 12월에 과달카날을 수복하기 위한 시도를 포기하고, 미육군 14 군단의 공세에 직면하여 1943년 2월 7일에는 잔존 병력을 철수시키게 된다.
과달카날 전역은 태평양 전구에서 연합군이 일본군에 거둔 첫번째 전략적 제병 승리이다. 일본이 태평양 지역에 대한 최대 점유를 유지한 시점이었으며, 이 전역 이후에는 수세로 돌아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