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뷔르흐 공국 (중세)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림뷔르흐 공국 (Limbourg)은 중세 시대 신성 로마 제국을 구성했던 제국정치체였다. 오늘날 벨기에의 리에주 지방에 해당되는 영토를 차지하였으며 이웃한 림뷔르흐주의 월경지인 푸런 시도 차지하였다. 대표도시는 림뷔르흐, 지금의 벨기에 랭부르 시에 해당된다.
림뷔르흐 공국 | ||||
---|---|---|---|---|
독일어: Herzogtum Limburg 프랑스어: Duché de Limbourg 네덜란드어: Hertogdom Limburg 림뷔르흐어: Hertogdom Limburg | ||||
| ||||
1350년경 림뷔르흐 공국의 영역 | ||||
수도 | 림뷔르흐 | |||
정치 | ||||
정치체제 | 군주제 | |||
림뷔르흐 공작 1065년~1082년 1082년~1119년 1288년~1294년 1494년~1506년 1792년~1794년 | 발레란 1세 하인리히 1세 장 1세 펠리페 3세 프란츠 2세 | |||
역사 | ||||
주요 역사 | ||||
• 설립 | 1065년 | |||
• 브라반트로 귀속 | 1288년 | |||
• 부르고뉴로 귀속 | 1406년 | |||
• 베스트팔렌 조약 | 1648년 | |||
• 위트레흐트 조약 | 1713년 | |||
• 해체 및 프랑스 합병 | 1797년 | |||
인문 | ||||
공용어 | 림뷔르흐어, 왈롱어 | |||
종교 | ||||
종교 | 가톨릭교 |
11세기 초 아르덴-룩셈베르크가의 프리드리히가 다스리던 백작령으로부터 출발하였다. 후대에 이르러 '림뷔르흐'라는 요새 도시를 건설하고 공국으로 승격되면서 그 이름도 도시의 명칭을 따왔다. 프리드리히는 집안의 막내였지만 영지를 잘 다스린 점을 인정받아 1046년 네더로타링언 공작이 되었다.[1] 림뷔르흐 공국의 영주권은 처음부터 공작의 소유권과 자연히 연계된 상태는 아니었기에 인근의 브라반트 백작과 영주권 갈등을 빚었으며 결국 브라반트 공작과 림뷔르흐 공작이라는 두 개의 작위가 신설되었다.
1283년 프리드리히의 손자 하인리히를 끝으로 가문의 대를 잇지 못하는 바람에 림뷔르흐 상속 전쟁이 벌어졌으며 이후 림뷔르흐는 브라반트 공작이 동군연합 형태로 다스리게 되었다. 이후 브라반트 공작령의 변경지역인 '오버르마스', 지금의 달렘, 팔켄뷔르흐, 스헤르토헨라더 일대와 함께 부르고뉴령 네덜란드의 17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16세기 네덜란드 독립 전쟁과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으로 인근 저지대 지역의 많은 영토가 떨어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림뷔르흐 공국은 합스부르크가가 지배하던 네덜란드 남부의 한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1789년 브라반트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데 이어 1793년 프랑스 혁명군이 점령하면서 공국의 역사는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후 옛 림뷔르흐 공국의 동쪽 끝 영토는 프로이센과 벨기에 등의 국가에 걸쳐 있다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비로소 벨기에의 영토로 정리되었다.
림뷔르흐 공국은 당시 여러 언어권의 경계에 위치했던 지역답게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방언이 공존하는 변경지역이었으며 이는 중세시대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림뷔르흐 공국의 북쪽과 동쪽 국경은 오늘날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의 국경이 만나는 삼합점 일대와 대략 일치한다. 공국의 일부였던 오이펜 일대의 동부 지역은 현재 벨기에의 독일어 공동체 지역의 최북단에 해당되는 곳이자 행정수도로 기능하고 있다. 한편 림뷔르흐 공국은 페이드에브르 (Pays de Herve)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는데, 이 지역은 톡 쏘는 냄새와 부드러운 식감의 림부르거 치즈가 생산되는 지역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