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챌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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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챌래 반란(핀란드어: Mäntsälän kapina)은 1932년 핀란드의 극우정당 라푸아 운동이 정부를 전복시키려 했으나 실패한 쿠데타 미수이다.
간략 정보 맨챌래 반란, 날짜 ...
맨챌래 반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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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군의 기관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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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지휘관 | |||||||
아르네 시흐보 패르 에빈드 스빈후부드 |
아르투리 부오리마 비흐토리 코솔라 쿠르트 발레니우스 | ||||||
병력 | |||||||
불명 | 5,000 여명 | ||||||
피해 규모 | |||||||
없음 | 1명 자살, 52명 체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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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2월 27일, 백위대원 400여명이 맨챌래의 사회민주당 대회 자리에 난입했다. 이후 라푸아 운동 지도부와 백위대원 백여 명이 맨챌래에 합류하고 전직 참모총장 쿠르트 마르티 왈레니우스 소장이 반란 지도부에 가담했다.
이틀 뒤 핀란드 내각은 공화국 수호법(1년 전 라푸아 운동 본인들이 제정을 주장했던)을 이용해 라푸아 운동 지도부의 체포를 명령했다. 아르네 시흐보 중장이 육군 부대 배치를 준비했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수도 헬싱키에는 기갑 및 야포 병력이 증강되었다.
3월 2일 대통령 패르 에빈드 스빈후부드가 라디오 연설로 오로지 반란 지도부만 처벌될 것이니 단순 가담자들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고하는 연설을 했다. 며칠 뒤 반란군은 와해되고 지도부는 체포되었다. 그해 봄 라푸아 운동은 불법정당으로 활동이 금지된다.
맨챌래 반란은 핀란드 내전 이후 핀란드 극우세력의 마지막 대형 준동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핀란드의 경제 사정이 호전되면서 극단주의 세력은 지지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