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눌푸스 카린티아이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아르눌푸스 카린티아이(라틴어: Arnulphus Carintiae, 독일어: Arnulf von Kärnten 아르눌프 폰 케른텐[*], 슬로베니아어: Arnulf Koroški 아르눌프 코로슈키: 850년 - 899년 12월 8일)는 동프랑크의 군주로 카를 대제의 4대손이다. 887년부터는 동 프랑크의 왕이자 894년부터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위를 놓고 구이도 3세와 람베르토 등과 분쟁하였으며, 896년부터는 바이에른의 레겐스부르크에서 사망할 때까지,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다. 그는 바이에른공 카를만의 서자로 아버지가 죽으면서 케른텐의 공작지위를 물려받았다.
아르눌푸스 카린티아이 Arnulphus Carintiae | |
---|---|
막스 바라크의 독일 황제록의 아르눌푸스. | |
로마인의 황제 | |
재위 | 896년 2월 22일-899년 12월 8일 |
전임 | 람베르투스 스폴레텐시스 |
후임 | 루도비쿠스 3세 카에쿠스 |
이탈리아왕 | |
재위 | 894–899 |
전임 | 람베르투스 스폴레텐시스 |
후임 | 루도비쿠스 3세 카에쿠스 |
동프랑크인의 왕 | |
재위 | 887년–899년 |
전임 | 카롤루스 3세 크라수스 |
후임 | 루도비쿠스 4세 인판스 |
로타링기아의 왕 | |
재위 | 887년–894년 |
전임 | 카롤루스 3세 크라수스 |
후임 | 츠벤티볼트 |
신상정보 | |
출생일 | 850년경 |
사망일 | 899년 12월 8일 |
왕조 | 카롤루스조 |
부친 | 카를로마누스 |
모친 | 리우츠빈드 |
배우자 | 오타 |
종교 | 천주교 |
서명 |
879년 바이에른을 잠시 통치하였고, 880년 아버지 카를만이 죽자 아버지의 영지인 바이에른과 이탈리아의 상속권을 주장했으나 묵살당했다. 이후 카를 3세에 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고, 886년 카를 3세가 노르만족과 마자르족을 뇌물로 매수해서 되돌려보내자 귀족들의 지지를 받고 쿠데타를 일으켜 887년 11월 동프랑크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이후 그는 황제는 아니었지만, 서프랑크와 이탈리아를 상대로 종주권을 주장, 서프랑크의 외드와 라울, 이탈리아의 베렌가르 등을 봉신으로 삼기도 했다.
890년대 초 동프랑크를 침략한 슬라브족을 판노니아 평원에서 격퇴하고, 모라바로 진격해 마자르족을 축출하고 모라바로 영토를 확장했다. 891년에는 갈리아 지역에 침략한 바이킹족과 교전, 데일에서 바이킹족을 크게 격퇴하여 승리했고, 로타링기아 내륙에 침입한 바이킹족을 격파했다. 891년 10월 루뱅과 플랑드르에서 바이킹족을 최종적으로 격파하여 국경 밖으로 몰아냈다. 892년 7월에는 프랑크족과 알레만니족으로 구성된 바이에른 부대를 이끌고 모라바를 정벌했다. 그러나 모라바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아르눌프가 불러들인 마자르족은 그의 생애 후반과 사후 동프랑크 왕국의 국경, 변방을 약탈하는 골칫거리가 된다.
893년부터는 구이도와 람베르트의 지배로부터 로마를 해방시켜 달라는 교황 포르모소의 요청으로 츠벤티볼트, 라울, 프리울리의 베렝가르 등을 거느리고 이탈리아를 원정, 스폴레토공작가와 교전하였다. 896년 2월 22일 이탈리아 밀라노로 입성, 람베르토 2세를 폐위시키고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위에 올랐다. 만년에는 중풍과 뇌졸중 등 병마에 시달려 이탈리아 문제에 더이상 개입할 수 없었고, 국내 문제와 노르만족의 침입, 로트링겐의 폭동 등의 반란에 직면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