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탐험가, 항해가 (1450–1506)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크리스토퍼 컬럼버스(영어: Christopher Columbus 크리스터퍼 컬럼버스[*], 이탈리아어: Cristoforo Colombo 크리스토포로 콜롬보[*] 1450년 10월 31일 ~ 1506년 5월 20일)는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탐험가이자 항해가이다. 1492년에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아 서회항로 개척에 나섰다가,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당대에 유럽인들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대륙이 있음을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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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
본명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
국적 | 이탈리아 | |||
출생일 | 1450년 10월 31일(1450-10-31) | |||
출생지 | 제노바 공화국 제노바 | |||
사망일 | 1506년 5월 20일(1506-05-20)(55세) | |||
사망지 | 카스티야 연합왕국 바야돌리드 | |||
활동 정보 | ||||
직업 | 탐험가 | |||
탐험지역 | 아메리카 대륙 | |||
서명 |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탐험한 곳을 아시아라고 믿었으나,[1] 총 4차례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탐험을 통해 금광이나 향신료 등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시아라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했다. 한때는 최초로 신대륙을 발견한 영웅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원주민에게 고문과 학살 등 잔혹 행위를 일삼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오늘날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2]
콜럼버스의 1차 항해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에 영토분쟁이 벌어졌는데, 이는 콜럼버스가 항해중에 알카소바스 조약(1479)을 위반했기 때문이다.[3] 양측은 토르데시야스 조약(1494)과 사라고사 조약(1529)을 체결하여 분쟁을 해결했다.
콜럼버스에 대한 연구는 이미 서양 사학계에 활발히 진행된 바가 있고,[4] 편지 등 새로 발견된 자료들로 인해 많은 사실이 밝혀져 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콜럼버스는 부귀공명의 세속적 욕망과 성경상 동방에 있다는 낙원(혹은 새예루살렘)을 찾고자 한 종교적 소명 의식 등 복합적인 열망을 가지고 위험한 탐험에 4차례나 나섰다고 한다.[5] 또한 그는 자신이 만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거의 나체에 가까운 모습이었고, 이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벗은 채로 생활했다는 창세기에 기록을 근거로 하여,[6][7] 실제 자신이 3차 항해에서 탐험한 곳의 일부를 동방의 에덴 동산이라고 믿기도 했다.[8]
한편, 그의 탐험 이후 감자와 카사바 등의 작물들이 유럽과 아시아에 전래되면서 인류는 기아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유럽에 알려 향후 역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