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비오 10세
제257대 교황 (1835–1914)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교황 비오 10세(라틴어: Pius PP. X, 이탈리아어: Papa Pio X)는 제257대 교황(재위: 1903년 8월 4일 ~ 1914년 8월 20일)이다. 본명은 주세페 멜키오레 사르토(이탈리아어: Giuseppe Melchiorre Sarto)로, 성 비오 5세 이래 기독교의 성인으로 시성된 교황이다. 축일은 8월 21일이다. 비오 10세는 기독교 교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을 거부하였으며, 오히려 전통적인 해석 및 관습을 계속 유지하며 장려하였다. 사목·전례·성사, 성직자 교육 등의 면에서 중요한 개혁을 단행하였으며, 특히 교회법을 개정하여 체계화하였으며, 성무일도서의 개정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전체 교회의 목자로서 교회 밖 일상생활에서도 가톨릭적 가치들을 반영한 생활방식을 살아갈 것을 권고하였다.
비오 10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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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자 | 레오 13세 |
후임자 | 베네딕토 15세 |
개인정보 | |
출생이름 | 주세페 멜키오레 사르토 |
출생 | 1835년 6월 2일 오스트리아 제국령 이탈리아 리에세 |
선종 | 1914년 8월 20일 (79세) 이탈리아 왕국 로마 |
서명 | |
문장 |
비오 10세는 20세기 교황들 가운데 본당 사목 경험이 가장 많은 교황으로서 17년간 본당 신부로 사목했던 경험을 토대로 어린이들을 위한 교리 교육서를 쉬운 용어로 작성하였다. 또한 신자들에게 영성체를 자주 하도록 권장하고, 어린이들이 첫 영성체를 할 수 있는 연령을 앞당기는 등 성체에 대한 신심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비오 10세는 신앙 무차별주의와 상대주의 같은 19세기 당시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있던 주류사상에 맞서 가톨릭 신앙을 수호하였다.
비오 10세의 재임기간중 공화파가 집권한 프랑스에서는 반교권주의에 입각한 급진적인 정교분리(라이시테) 정책이 에밀 콩브 내각에서 추진되었다. 프랑스 내에 있는 3,000개의 카톨릭계 학교가 폐쇄되고 미인가 종교시설과 단체가 추방되었으며 예수회가 해산되었다. 이로 인해 카톨릭 세력이 급격히 위축되자 교황은 이를 맹렬히 비난하였고 양국의 관계는 악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