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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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프테리오스 키리아쿠 베니젤로스(그리스어: Ελευθέριος Κυριάκου Βενιζέλος, 하니아의 무르니에스, 1864년 8월 23일 ~ 1936년 3월 18일)은 그리스의 저명한 혁명가이며, 20세기 초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이자 뛰어난 정치가였다.[1][2][3] 수 차례 그리스 국무 총리직에 선출되어 1910년에서 1920년, 1928년에서 1932년까지 총리직을 역임했다. 베니젤로스는 그리스의 국내외 여러 문제에 깊은 영향을 남겨, "현대 그리스의 창건자"로 추앙받으며,[4] 아직도 '에트나르히스'(ἐθνάρχης, '국가의 지도자')로 널리 불린다.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Ελευθέριος Βενιζέλος | |
베니젤로스(1919년) | |
그리스의 제93대 총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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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 1910년 10월 6일~1915년 2월 25일 |
전임: 스테파노스 드라구미스(제92대) 후임: 디미트리오스 구나리스(제9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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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 |
출생일 | 1863년 8월 23일 |
출생지 | 오스만 제국 크레타 |
사망일 | 1936년 3월 18일(1936-03-18)(72세) |
사망지 | 프랑스 제3공화국 파리 |
국적 | 그리스 왕국 |
정당 | 자유당 |
배우자 | 마리아 카텔루주(1891-1894) 엘레나 스킬리치(1921-1936) |
자녀 | 키리아코스, 소포클리스 |
종교 | 그리스 정교회 |
처음에 그는 국제 사회에서도 활동하여 크리티 자치국이 자치를 획득하고 나중에 그리스에 통합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곧 그는 그리스로 돌아와 정치적 교착 상태를 해결하고 국무 총리가 되었다. 그는 헌법 및 경제 개혁으로 그리스 사회의 현대화에 주춧돌을 놓았을 뿐 아니라 이후의 전쟁을 대비하여 육해군을 현대화했다.
발칸 전쟁(1912년~1913년) 때, 베니젤로스는 터키에 대항하는 발칸 연맹 창설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그의 지도력 덕분에 마케도니아, 이피로스, 에게해의 섬들을 해방시켜 그리스의 영토와 인구는 갑절로 늘었다.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 당시 그는 연합국 편에 서서 덕분에 그리스의 국경을 더 넓힐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외교 정책 때문에 국왕과 갈등을 빚어 국가적 분열이 일어났다. 이 문제로 왕당파와 베니젤로스파로 국론이 분열되어 수 십년간 그리스 정계와 사회에 폐단을 남겼다. 그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베니젤로스는 1920년 총선에서 패했고, 이후 그리스는 그리스-터키 전쟁 (1919년 ~ 1922년)에서 패배했다.
이후 베니젤로스는 다시 총리직에 올라 그리스의 이웃 나라들과 정상 관계를 복원하고 그의 헌법 및 경제 개혁을 확대했다. 1935년 베니젤로스는 군사 쿠데타를 지원하기 위해 사임했으나 쿠데타는 실패하여 그가 시작했던 그리스 제2공화국을 크게 약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