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 (후한)
후한 말기의 무장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원소(袁紹, ? ~ 202년 6월 28일(음력 5월 21일))는 후한 말의 군웅이다. 자는 본초(本初)이며 여남군 여양현(汝陽縣)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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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정보 원소袁紹, 임기 ...
원소 袁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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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의 기주목 | |
임기 | 191년-202년 6월 28일 |
전임 | 한복 |
후임 | 원상 |
군주 | 후한 헌제 |
후한의 사예교위 | |
임기 | 190년-191년 (자칭) |
후한의 발해태수 | |
임기 | 190년 |
이름 | |
별명 | 자: 본초 (本初) |
신상정보 | |
출생일 | 불명 |
출생지 | 하남윤 낙양현 (본적은 여남군 여양현) |
사망일 | 202년 6월 28일 (음력 5월 21일) |
사망지 | 위군 업현 |
부모 | 원성과 그 천첩 |
군사 경력 | |
복무 | 후한군 → 독립 군벌화 |
복무기간 | 186년-202년 |
최종계급 | 대장군 (196년) |
주요 참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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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가의 사생아 출신으로 젊어서는 청류파 사상가로 명성을 떨쳤다. 후한의 정치적 부패를 타파하고자 십상시를 일소하였으나, 동탁의 개입으로 정권을 잡는 데 실패하고 중앙에서 쫓겨났다. 원래는 중앙에서 태어난 관료 출신이었지만 사상가·정치가로서의 명망과 경력을 바탕으로 기주 일대에서 빠르게 군벌화하였고, 한복·공손찬·장연·전해·공융 등의 정부 관료·군벌들을 격파·병합함으로써 가장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였으나 조조에게 패한 뒤(관도대전) 202년에 병으로 죽었다.
이후 원소의 세력은 후계자인 3남, 원상이 물려받았으나 원상의 생물학적으론 이복형이자 족보상으론 종형이던 원소의 장남, 원담의 반발로 원소 세력은 분열 되었으며 이후 조조의 개입으로 전부 토벌되었다.
배잠(裴潛)은 원소는 4대가 모두 삼공의 직위를 얻은 당대 최고의 명문가 출신으로 ‘외면은 관대하고 우아했고, 재간과 도량을 모두 갖춘’ 인물이라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