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옥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교육자, 경찰관, 정치인 (1894–1960)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조병옥(趙炳玉, 1894년 5월 21일 ~ 1960년 2월 15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교육자, 경찰관, 정치인이다. 일제 강점기 초반 도미 유학과 독립운동에 종사하였고, 안창호에게 감화되어 그의 흥사단과 수양동지회, 국민회 일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 뒤 태평양 전쟁 무렵 수양동우회 사건 등으로 두 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해방 정국에서는 한민당 창당에 참여한 뒤 미군정의 경찰총수를 지냈으며, 1948년 정부수립 후에는 UN대표단, 내무부 장관 등을 거친 뒤 이승만과 결별했다. 해방 직후 미군정 치하 제2대 경찰 통수권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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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정보 조병옥趙炳玉, 출생 ...
조병옥 趙炳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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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4년 5월 21일(1894-05-21) 조선 충청도 천안군 |
사망 | 1960년 2월 15일(1960-02-15)(65세) 미국 워싱턴 D.C. 월터리드 육군병원에서 병사[1] |
성별 | 남성 |
국적 | 대한민국 |
본관 | 한양 |
학력 | 와이오밍 대학교 학사·석사 컬럼비아 대학교 경제학 박사[2] |
직업 | 독립운동가, 경찰관, 정치가 |
경력 | 고려대학교 초빙교수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겸 고문 민주당 대선후보 제5대 내무부 장관 |
부모 | 아버지 조인원(趙仁元, 독립운동가) 어머니 남양 홍씨 부인 |
형제 | 남동생 조병호(趙炳鎬, 독립운동가) |
배우자 | 노정면(盧禎冕) |
자녀 | 조윤형(차남), 조순형(삼남) 등 3남 2녀 |
종교 | 개신교(장로회) |
의원 선수 | 2 |
정당 | 민주당 |
지역구 | 서울 성동구 을 |
당내 직책 | 대표최고위원 겸 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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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주당과 민주국민당에서 활동하였으며, 1954년 호헌동지회에 참여하였으며, 민주당에 입당, 신익희·윤보선·유진산 등과 함께 민주당 구파의 리더로 활동하였다. 1950년 대한민국의 제2대 정·부통령 선거에 부통령 후보자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고, 1960년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후보자로 출마하였으나 선거유세 중 병으로 미국 워싱턴 D. C. 월터리드 육군병원에 입원했다가 급서하였다. 제1공화국 후반 여야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장택상, 이기붕 등과 수시로 만나 회담, 절충을 주도하였으며, 기자들이나 강경투쟁을 요청하는 야당인사들에게 하던 “빈대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울 수는 없지 않느냐”는 말은 회자화되었다. 본관은 한양,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유석(維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