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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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중국어 간체자: 中华人民共和国, 정체자: 中華人民共和國, 병음: Zhōnghuá Rénmín Gònghéguó 중화런민궁허궈[*]) (듣기 (도움말·정보))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국가이다. 줄여서 중국(중국어 간체자: 中国, 정체자: 中國, 병음: Zhōngguó 중궈[*])이라고도 한다.
중화인민공화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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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华人民共和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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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어 | 为人民服务 | ||
표어 설명 |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 | ||
국가 | 의용군 행진곡 | ||
수도 | 베이징 | ||
최대 도시 | 상하이 (도시 인구) 충칭 (행정 구역 인구) | ||
정치 | |||
정치체제 | 단일국가, 단원제, 공화제, 집단지도체제 | ||
총서기, 주석1 국무원총리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장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최고인민법원장 부주석 | 시진핑 리창 자오러지 왕후닝 저우창 한정 | ||
입법부 | 전국인민대표대회 | ||
집권여당 | 중국공산당 | ||
역사 | |||
건국 | |||
•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수립 | 1931년 11월 7일 | ||
• 대장정 | 1934년 11월 5일 | ||
•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 1949년 10월 1일 | ||
지리 | |||
면적 | 9,596,960 km2 (4 위) | ||
내수면 비율 | 2.8% | ||
시간대 | CST2 (UTC+08:00) | ||
DST | 없음 | ||
인문 | |||
공용어 | 표준 중국어 | ||
지역어 | 위구르어, 티베트어 | ||
데모님 | 중국인 | ||
민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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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
2021년 조사 | 1,412,600,000명 (1위) | ||
인구 밀도 | 140명/km2 (72위) | ||
경제 | |||
GDP(PPP) | 2021년 어림값 | ||
• 전체 | $27조 719억 (GDP/PPP) | ||
• 일인당 | $19,338 (1인당 GDP/PPP) | ||
GDP(명목) | 2021년 어림값 | ||
• 전체 | $16조 8,629억 (GDP/명목) | ||
• 일인당 | $12,556 (1인당 GDP/명목) | ||
HDI | 0.719 (91위, 2014년 조사) | ||
통화 | 런민비 (위안)3 (CNY) | ||
종교 | |||
국교 | 없음 (국가무신론) | ||
종교 | 불교 18.3% 기독교 5.2% 이슬람교 1.6% 국가무신론 및 민간신앙 74.5% 기타 0.4%[1] | ||
기타 | |||
ISO 3166-1 | 156, CN, CHN | ||
도메인 | .cn4 | ||
국제 전화 | +86 | ||
1 국제사회에서는 주로 명목상으로는 중국공산당 총서기 직을 최고지도자로 사용한다. 이는 중국공산당 장정에 에 명시되어있다.[2] 2 전국이 단일 시간을 쓴다. 3 다음 지역은 다음 통화 단위를 사용한다. • 홍콩: 홍콩 달러 • 마카오: 파타카 4 다음 지역은 다음 국가도메인을 사용한다. • 홍콩: .hk • 마카오: .mo |
수도는 베이징시이며, 최대 도시는 상하이시이다. 이 밖의 주요 도시로는 광저우시, 난징시, 시안시, 푸저우시, 칭다오시, 충칭시, 홍콩 등이 있다.
근대 중국에서는 1911년 국민당 정부가 들어섰으나,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면서 각지에서 군벌정부가 권력을 휘두르는 군벌 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이후 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5·4 운동의 반제국주의 강령을 중심으로 창당된 중국공산당은 1920년 이후 세력을 급격히 키웠고, 국민정부과 계속해서 내전을 벌였다. 중일 전쟁 이후 중국 대륙의 주도권을 두고 1946년 제2차 국공 내전이 발발하였고, 그 결과 타이완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영역이 공산당 측으로 넘어가 1949년 마오쩌둥을 초대 국가주석으로 하여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이 선포되었다.
소련의 막대한 영향력을 받는 중국공산당은 마오쩌둥으로 대약진 운동을 펼쳤고, 문화 대혁명도 실시하며 사회주의 국가의 틀을 굳히려 하였다. 다만 대약진 운동도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해 실패하였고, 문화 대혁명도 수많은 국가적, 문화적 피해와 민간인 피해를 남겼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은 사회주의의 한계를 실감하게 되었고, 이후 소련의 영향력이 낮아지면서 덩샤오핑의 지도로 개혁·개방을 시행하면서 시장경제체제가 도입되어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받아들였다. 덩샤오핑은 흑묘백묘론을 내세우며 광활한 영토와 막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어냈고, 화평굴기를 외교 기조로 삼아 평화로운 공존 및 팽창 정책을 추구하였다.[3][4][5][6] 이에 중국과 미국은 투키디데스의 함정 상황에 놓여있다는 평가가 있다.[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