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통 바슐라르
프랑스의 철학자 (1884–1962)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가스통 루이 피에르 바슐라르(Gaston Louis Pierre Bachelard)는 1884년 6월 27일 바르쉬로브에서 태어나 1962년 10월 16일 파리에서 사망한 프랑스의 철학자로, 과학, 시, 교육, 시간에 관한 철학을 연구했다. 과학기술사연구소(IHST)의 소장이었던 바슐라르는 프랑스의 역사적 인식론 학파를 대표하는 주요 학자 중 하나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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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정보 | |
출생 | Bar-sur-Aube |
사망 | 파리 9구 |
국적 | 프랑스 |
학력 | 파리 문학부 ( - 1927) |
자녀 | Suzanne Bachelard |
서명 | |
저명한 인식론 학자로서, 바슐라르는 《과학적 정신의 형성》에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물리학과 화학에서 이뤄진 위대한 과학적 발견에 관한 미지의 방향을 개척했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선험적 개념들로 구성되는 과학적 앎에서 생기는 장애를 파악하고 분석하고자 인식론적 장애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선험적 개념들이란 지적, 은유적, 심리적 본성을 지니고 연구자와 학생의 정신을 사로잡으며, 현상적 앎에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선재하는 것들과 연관된 것이다. 《무의 철학》에서 바슐라르는 주체의 경험에 따라 이러한 장애들이 다르다고 여기기에 "인식론적 측면"이라는 보충적인 개념을 제시하는데, 본인의 개인적인 측면에서 근거를 찾길 꺼리지 않으며, 이 개념을 논리학, 물리학, 화학, 또는 수학에서 생기는 예시에 적용한다.
바슐라르는 창조의 관점에서 철학적 접근과 상상력의 문학적 접근을 변혁했다. 바슐라르는 시인과 작가(그 중에서도 로트레아몽, 에드거 앨런 포, 노발리스, 앙리 보스코), 화가(마르크 샤갈, 클로드 모네, 장 레볼), 조각가와 판화가(루이 마르쿠시, 알베르 플로콩), 상징주의와 연금술에 관심을 지녔다.
바슐라르는 문학과 과학 사이의 관계, 즉 상상계와 합리성 사이의 관계를 검토했다. 이것들은 대립적일수도, 보완적일수도 있다. 강력한 감정적 능력에 대한 이미지는 과학자에게 환상들을 불러온다(예컨대 불의 이미지가 전기에 대한 앎을 막는 것처럼). 그러나 동일한 이 이미지는 문학에서 예기치 못한 과다한 시적 효과를 일으킨다. 그것의 매력적인 힘은 매우 중요하다(예컨대 노발리스와 횔덜린에게 있어서 불의 이미지처럼). 시적 몽상은 현실의 것과 밀접하게 "교감하는" 한편, 과학적 접근은 "상극"이다. 과학적 접근은 현실의 정서적 부담과는 거리를 둔다.
창조와 발견에 대한 새 길에 대한 자신의 주목과 일관적으로, 바슐라르는 베르그손 철학과의 비판적 대화에서, 다른 것들과는 독립적인, 순간들로 구성되는 비연속적인 시간을 구상했는데, 이는 친구 가스통 루프넬의 《실로에》에 기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