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창 (14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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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창(鄭汝昌, 1450년 음력 5월 5일 ∼ 1504년 음력 4월 1일)은 조선 전기의 문신, 성리학자, 작가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자는 백욱(伯勗), 호는 일두(一蠹)·수옹(睡翁),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문묘에 종사된 해동 18현 중의 한 사람이다.
간략 정보 정여창鄭汝昌, 임기 ...
정여창 鄭汝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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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 경상도 안음 현감 | |
임기 | 1496년 2월 29일 ~ 1498년 8월 26일 |
군주 | 연산군 이융 |
섭정 | 신승선 |
이름 | |
별명 | 자는 백욱(伯勗), 호는 일두(一蠹), 수옹(睡翁), 시호는 문헌(文獻) |
신상정보 | |
출생일 | 1450년 음력 5월 5일 |
출생지 | 조선 경상도 함양 |
거주지 | 조선 한성부 |
사망일 | 1504년 음력 4월 1일 (향년 55세) |
사망지 | 조선 함경도 종성에서 병사 |
국적 | 조선 |
학력 | 1490년 별시문과 급제 |
정당 | 무소속 |
본관 | 하동(河東) |
부모 | 아버지 정육을, 어머니 경주 최씨 |
형제자매 | 동생 정여관 |
배우자 | 완산 이씨 부인 |
친인척 | 할아버지 정복주, 외할아버지 최효손, 10촌 정인지, 11촌 정현조, 11촌 정상조, 11촌 정숭조, 인척 세조 |
직업 | 문신, 성리학자, 철학자, 사상가, 작가, 정치인 |
종교 | 유교(성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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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이천(利川)의 율정(栗亭) 이관의(李寬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467년(세조 13년) 이시애의 난으로 아버지 정육을(鄭六乙)이 전사하자 세조의 특명으로 의주판관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다. 그 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1490년(성종 20년) 학행으로 관직에 나갔다. 그해 별시 병과에 급제하여 연산군의 스승되었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종성으로 유배되어 1504년(연산군 10) 죽었다. 그 뒤 갑자사화가 일어나 부관참시 되었다가 1517년(중종 12)에 복권되어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그의 성리학 이론은 정몽주·김숙자·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조선 전기 사림파의 주자학적 학문을 계승한 것이어서 1610년(광해군 2) 문묘에 승무(陞廡)되었다. 함양 남계서원(藍溪書院)에 배향되었다.
학역재 정인지, 하성위 정현조, 정숭조, 선조임금의 생모 하동부대부인 등은 그의 일족
생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