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버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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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버넷(William Burnet 1687년 / 1688년[1] 3월 - 1729년 9월 7일)은 영국의 관료이며, 식민지 총독을 지낸 정치인이다. 뉴욕과 뉴저지 식민지(1720년 - 1728년), 그리고 매사추세츠와 뉴햄프셔 식민지(1728년 - 1729년)의 총독을 지냈다.
윌리엄 버넷 William Burne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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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버넷의 초상화 | |
잉글랜드의 뉴욕 식민지 총독 | |
임기 | 1720–1728 |
전임 | 피터 슈일러 |
후임 | 존 몽고메리 |
군주 | 조지 1세 조지 2세 |
잉글랜드의 뉴저지 식민지 총독 | |
임기 | 1720–1728 |
전임 | 루이스 모리스 |
후임 | 존 몽고메리 |
잉글랜드의 메사추세츠 만 직할식민지 총독 | |
임기 | 1728년 7월 19일 – 1729년 9월 7일 |
전임 | 윌리엄 더머 |
후임 | 윌리엄 더머 |
잉글랜드의 뉴햄프셔 식민지 총독 | |
임기 | 1728년 12월 19일 – 1729년 9월 7일 |
전임 | 존 원트워스 |
후임 | 존 원트워스 |
신상정보 | |
출생일 | 1688년 3월 1일(1688-03-01)(336세) |
출생지 | 네덜란드 공화국 헤이그 |
사망일 | 1729년 9월 7일(1729-09-07)(41세) |
사망지 | 메사추세츠 만 보스톤 |
부모 | 길버트 버넷 |
배우자 | 매리 반 혼 |
서명 |
버넷은 유서 깊은 가문에서 태어났다. (버넷의 대부는 그가 태어난 직후 잉글랜드 왕 윌리엄 3세가 되었다. 아버지 길버트 버넷은 이후 솔즈베리 주교가 되었다). 그는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그를 가르친 가정교사 중에는 아이작 뉴턴도 있었다.
버넷은 그의 생애 대부분 활발하게 지식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고, 1705년~1706년에는 왕립 학회의 펠로우로 선정되었다. 처음에는 중요한 직책을 맡지 않았지만, 재정적 고려, 정치적 관계를 통해 뉴욕과 뉴저지 식민지 총독직을 맡았다. 뉴저지의 총독직은 특별한 논란거리는 없이 보냈지만, 의회의 법안에 동의를 해주는 대가로 사실상의 뇌물을 받는 관례를 만들었다. 뉴욕에서는 북미의 중앙부에서 인디언과 직접 교역을 선호하였고, 식민지 정책을 실시하기 위해, 올버니와 몬트리올 사이의 모피 무역을 끝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뉴욕의 통치는 버넷이 지지한 지주와 상인 사이의 정치적 분열을 만들며 끝을 맺었다. 잉글랜드 국왕 조지 1세의 사후 1727년 조지 2세는 버넷을 매사추세츠와 뉴햄프셔 식민지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뉴햄프셔의 총독직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지만, 매사추세츠 식민지 의회와 총독의 급여 문제에 관해 이전투구식 토론을 의회와 6개월간 벌인 후, 개최 장소를 보스턴에서 멀리 옮겼다. 이 논란은 식민지의 다른 사업을 지연시켰고, 1729년 9월까지 계속되다가 버넷이 사망하게 된다. 타고 있던 마차가 전복되어 물속에 빠지면서 병이 들어 사인으로 연결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