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대한민국의 정치가, 제2공화국 前 국무총리 (1899–1966)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장면(張勉, 1899년 8월 28일 ~ 1966년 6월 4일)은 일제강점기의 교육자·종교가·번역가·출판인·문인·저술가였으며 훗날 대한민국의 종교가·외교관·교육자·정치인이었다. 1956년 8월 15일부터 1960년 4월 25일까지[1] 대한민국의 제4대 부통령이었다. 1950년 11월 23일부터 1952년 4월 23일까지 제2대 대한민국 국무총리를, 1960년 8월 19일부터 1961년 5월 17일까지 제7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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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張勉 | |
대한민국 제7대 국무총리 시절 장면 | |
대한민국의 제2·7대 국무총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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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 1960년 8월 19일~1961년 5월 18일 (제7대 국무총리) |
대통령 | 윤보선 |
전임: 허정(제6대) 후임: 최두선(제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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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 1950년 11월 23일~1952년 4월 23일 (제2대 국무총리) |
대통령 | 이승만 |
전임: 이범석(제1대) 후임: 장택상(제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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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 1956년 8월 15일~1960년 4월 25일 |
대통령 | 이승만 |
전임: 함태영(제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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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 |
출생일 | 1899년 8월 28일(1899-08-28) |
출생지 | 대한제국 한성부 종로 서서 적선방 공조후동계 공후동 (現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적선동) |
사망일 | 1966년 6월 4일(1966-06-04)(66세)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 |
국적 | 대한민국 |
학력 | 미국 맨해튼 칼리지 |
경력 | 초대 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
정당 | 민주당 |
부모 | 장기빈(부), 황루시아(모) |
형제 | 7남 6녀 중 5남 동생 장발, 동생 장극, 동생 장정혜, 동생 장정온, 동생 장정량 |
배우자 | 김옥윤 |
자녀 | 6남 3녀 차남 장진, 차녀 장의숙, 4남 장익, 5남 장순 |
종교 | 유교(성리학) → 천주교(세례명: 요한) |
별명 | 운석 (호) |
웹사이트 | 운석 장면 박사 기념관 |
초명은 장지태(張志兑), 아호(雅號)는 운석(雲石), 세례명은 요한(Johan), 영문명은 John Myeon Jang·존 면(John Myeon), 일본식 이름은 다마오카 쓰토무(玉岡 勉).
종로구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에는 천주교 선교 사목 활동과 언론 활동, 용산신학교, 동성고등학교, 계성국민학교, 혜화유치원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광복 이후 정계에 투신하여 1946년 민주의원 의원, 1947년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 의원, 1948년 대한민국의 제헌 국회의원[2]에 당선되었으며, 1948년 12월 7일부터 12월 12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제3차 UN 총회에 한국대표단 수석대표로 파견되어 국제사회에 대한민국 정부의 승인을 얻어냈다.
1948년 제3차 UN 총회 한국 대표단 수석대표와 1951년 10월 제6차 UN 총회 파견 수석대표로 다녀왔으며, 대통령 바티칸특사를 거쳐 제1대 주미 한국대사 등을 지내고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미국군과 UN군의 한국전 참전을 호소하여 성사시켰다. 1950년 8월과 9월 UN 안보리에서 ‘한국 전쟁은 내전이며 미국과 남한의 북침’이라는 소련 측의 주장을 논파하기도 하였다.
1946년 과도입법의원 의원 재직 중에는 국대안(국립대학교 설치안)을 발의하여 성사시켰고, 공창제 폐지를 주창하여 가결시켰다. 1948년 UN 총회에 대한민국의 승인을 요청하는 한국 대표단의 수석대표로 회의에 참석하여 국제사회에 대한민국 정부의 승인을 얻어냈고, 한국 전쟁 때는 UN과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을 도와줄 것을 호소하여 지원을 이끌어냈다. 호헌동지회의 조직과 민주당 결성에 참여하였다. 군사정권에 실각한 이후 1990년대부터 재평가 여론이 나타나고 있으며 199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1966년 6월 4일에 자신의 거주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에서 간장염과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인하여 66세로 급서한 장면은 청렴하고 깨끗한 정치가라는 평가가 자자했다. 그의 본관은 인동(仁同)으로 초명(初名)은 장지태(張志兑), 호는 운석(雲石)이다. 종교는 천주교로서 세례명은 ‘요한’(John)이며, 따라서 장 요한으로도 불리고, 장면 스스로도 영문명은 존 면(John Myeon)이라 했다. 일제 강점기의 창씨개명은 ‘다마오카 쓰토무’(玉岡 勉)이다. 한성부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평안남도 중화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그 후 경기도 인천에서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