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
1960년 4월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제2공화국 출범으로 이어진 대한민국의 혁명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4·19 혁명(四一九革命) 또는 4월 혁명(四月革命)은 1960년 4월 19일 대한민국의 학생과 시민들이 이승만 정부의 부정부패에 대항하여 일으킨 민주 항쟁이다. 3월 15일에 실시된 대통령과 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개표조작에 반발해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이 시위를 시작했고 대규모의 시민들이 참여하며 전국적으로 확대된 반독재 투쟁이자 혁명이었다. 부정 선거 당시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은 4할 사전 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의 부정 선거를 저질렀다.
4·19 혁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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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960년 4월 | ||
지역 | 대한민국(전국) | ||
원인 | 3·15 부정선거 | ||
목적 |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 ||
종류 | 민주주의 혁명 | ||
결과 | 대한민국 제2공화국의 출범 | ||
시위 당사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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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물 | |||
참여 인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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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자 | |||
사망자수 | 186명(시민)[1][2] | ||
부상자수 | 6,026명(시민)[3] |
3·15 마산 의거에 참여한 김주열이 실종된 지 27일만인 4월 11일 아침,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오른쪽 눈에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오른 것이 부산일보의 허종 기자를 통해 보도되면서 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지며 격화되었다.[4] 4월 18일에는 고려대 학생들이 시위 후 귀교 중 피습을 당하기도 했다. 4월 19일 경찰이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몰려드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발포 이후 시위대는 무장하여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맞섰다.
전국민적 저항과 군지휘부의 무력동원 거부에 봉착한 대통령 이승만이 4월 26일 하야를 발표함으로써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몰락하였고, 이 혁명의 결과로 과도 정부를 거쳐 6월 15일(6·15 개헌)에 제2공화국이 출범하였다.
개정된 헌법에 따라 국회는 참의원과 민의원으로 구성되었다.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윤보선에 의해 지명된 장면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국무총리에 취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