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털루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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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털루 전투(Battle of Waterloo; 프랑스어: Bataille de Waterloo)는 1815년 6월 18일 오늘날의 벨기에 워털루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끄는 프랑스 북부군은 제7차 대프랑스 동맹의 주요 2개국 군대에게 패배를 당했다. 제1대 웰링턴 공작 아서 웰즐리가 이끄는 영국 주축의 연합군과 게프하르트 레베레히트 폰 블뤼허가 이끄는 프로이센군이 2개국 군대였다. 이 전투로 인해 나폴레옹 전쟁은 완전히 종결된다.
워털루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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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털루 전역의 일부 | |||||||
윌리엄 세드러의 워털루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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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프랑스 제국 |
대영제국 | ||||||
지휘관 |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아서 웰즐리 |
1815년 3월, 나폴레옹이 다시 황제가 되자 수많은 유럽 국가들은 그에 대항해 제7차 대프랑스 동맹을 맺었고, 그 후 군대를 동원하기 시작했다. 웰링턴과 블뤼허의 군대는 프랑스 북동부의 국경지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그들을 각개격파하여 다른 연합군이 그들과 협조하여 프랑스를 침공하려는 것을 차단하려고 했다. 6월 16일 나폴레옹은 리니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을 성공적으로 공격했고, 프랑스의 일부 군대는 카트레바스 전투에서 영국 주축의 연합군을 공격 중이었다. 콰트라바스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성공적으로 방어했지만 프로이센 군의 패배로 웰링턴은 17일에 워털루로 이동해야 했다. 나폴레옹은 웰링턴과 나란히 후퇴하는 프로이센군을 추격하기 위해 그의 병력 제3파를 보냈다. 이 후퇴 동안 프로이센의 선봉과 프랑스군은 우아브르 전투를 벌였다.
프로이센군이 그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웰링턴은 몽생장의 브뤼셀 도로에서 전투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이곳에서 18일까지 프랑스군의 반복되는 공격을 막아냈고, 이 무렵 격렬한 전투 끝에 이곳에 도착한 프로이센군이 영국군을 지원했다. 저녁에 나폴레옹은 마지막 예비군인 제국친위대를 투입해 마지막 공격을 가했지만 영국군은 이들을 다시 격퇴시켰다. 프로이센군이 프랑스군의 우익을 돌파하면서 웰링턴이 이끄는 영국 주축의 연합군 역시 중앙에서 반격을 개시했고, 프랑스군은 궤멸했다.
워털루 전투는 워털루 전역과 나폴레옹 전쟁의 결정적 전투였다. 웰링턴에 따르면 "전투는 당신의 삶에서 당신이 본 것 중 가장 아찔한 것"이었다.[1] 4일 후 나폴레옹은 폐위되었고, 7월 7일 연합군은 파리에 입성했다. 워털루 전투 패배는 나폴레옹의 통치를 끝냈고, 그의 백일천하도 이 전투로 끝났으며, 프랑스 제1제국 또한 붕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