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 (1868년)
대한민국의 초대 부통령, 독립운동가, 교육자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이시영(李始榮, 1869년 12월 3일 ~ 1953년 4월 17일)은 조선, 대한제국의 관료이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본관은 경주로, 자(字)는 성흡(城翕), 성옹(聖翁)[2], 호는 성재(省齋)·시림산인(始林山人), 본명은 성흡(聖翕)이다. 총리대신을 지낸 김홍집의 사위이다.[2] 1885년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1891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부승지, 우승지(右承旨)에 올라 내의원 부제조, 상의원 부제조 등을 지냈다.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 독립 운동에 투신, 일가족 40인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시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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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 |
후임 | 김성수 |
이름 | |
별호 | 호 성재, 시림산인, 자 성옹, 성흡 |
신상정보 | |
출생일 | 1869년 12월 3일(1869-12-03) |
출생지 | 조선 한성부 |
사망일 | 1953년 4월 17일(1953-04-17)(83세) |
사망지 | 대한민국 경상남도 부산시 |
국적 | 대한민국 |
정당 | 한국국민당(1935)→한국독립당(1940)→독립촉성중앙회(1946)→민주국민당(1952) |
배우자 | 경주 김씨[1], 반남 박씨 |
자녀 | 아들 이규열 |
종교 | 유교(성리학) → 대종교 → 개신교(감리교) |
서훈 |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고, 1919년 9월 통합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후 김구, 이동녕 등과 함께 임시 정부를 수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광복 이후 귀국,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임정 요인이 단정론과 단정반대론으로 나뉘었을 때는 단정론에 참여하였다. 1948년 7월 24일부터 1951년 5월 9일까지 대한민국의 제1대 부통령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제2대 대통령선거에 민주국민당 후보로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했다.
선조 때 영의정 이항복의 10대손, 영조 때 영의정 이종성의 5대손이다. 이조판서, 우찬성 등을 지낸 이유승(李裕承)과 동래 정씨(東萊鄭氏)의 아들이며, 이건영(李健榮), 이석영(李石榮), 이철영(李哲榮), 이회영(李會榮)의 동생이자 이소영(李韶榮), 이호영(李護榮)의 이복 형이다. 조선 마지막 영의정이자 대한제국 초대 내각총리대신 김홍집의 사위이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신익희와도 인척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