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기제
청나라의 제도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팔기제 또는 팔기(만주어: ᠵᠠᡴᡡᠨ
ᡤᡡᠰᠠ Jakūn Gūsa, 한국 한자: 八旗)는 청나라 시대 특유의 제도로, 만주족이 주도가 된 군사·행정 조직이며, 팔기에 속한 사람들을 일컬어 기인(旗人)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팔기제에서 포함된 군사조직을 팔기군(八旗軍)이라고 한다.
팔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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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어: ᠵᠠᡴᡡᠨ ᡤᡡᠰᠠ Jakūn Gūsa, 한국 한자: 八旗 | |
활동 기간 | 1615년-1938년[1][2][3][4] |
국가 | 청나라 중화민국[4] 만주국 |
소속 | 청군 |
본부 | 경사(京师)、동북(东北)、서안(西安)、영하(宁夏)、수원(绥远)、형주(荆州)、강녕(江宁)、항주(杭州)、성도(成都)、복주(福州)、이리(伊犁)、올리아스타이(乌里雅苏台)、청주(青州)、개봉(开封) 등지 |
장비 | 전봉(前锋)、호군(護軍)、보갑(步甲)、마갑(馬甲)、화승총(火繩銃)、화갑(炮甲)、수사(水師) 등 |
참전 | 사르후 전투、영원성 전투、영금 전투、정묘호란,·병자호란、기사의 변、일편석 전투、입관 전역、삼번의 난、청-러시아 국경 분쟁、청-중가르 전쟁、대·소 화탁 원정、 대·소 금천 원정、청-버마 전쟁、임상문의 난、청-베트남 전쟁、청나라-네팔 전쟁、백련교도의 난、아편전쟁、태평천국의 난、청불 전쟁、청일 전쟁、의화단 운동、신해혁명 등 |
표장 | |
군기(軍旗) | |
팔기제는 청의 태조로 여겨지는 누르하치가 17세기 초에 설립하였다고 전하며 청나라가 중원을 통일한 후 청의 제도의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초기의 팔기 제도는 만주족의 전통적인 군역 및 봉급지급의 단위, 장비의 관할권, 봉토의 관할권을 나누는 등, 주로 행정적 편의에 의해 나뉜 것이다. 누르하치는 1620년대 몽골의 여러 군대를 흡수 통합하면서 그들을 팔기에 포함시켰고, 나중에 중국 한족(漢族)의 군대를 팔기에 포함시켰으며, 이들을 8개의 깃발군이라는 뜻으로 팔기군(八旗軍)이라고 칭하였다. 최종적으로 팔기군이 확립된 것은 1642년이다. 만주와 몽골, 한족 각각에 팔기가 만들어져 "만주팔기", "몽고팔기", "한군팔기"로 불리었으며, 이런 식으로 하여 3개 민족공동체에 각 8개 깃발로 24개 깃발 체제가 갖추어졌다. 이들 팔기군 중 상위 3개의 깃발(정황기, 양황기, 정백기)을 단 부대는 황제의 직속부대이고 나머지 5개의 깃발을 단 부대는 여러 제후들의 관할이다. 중국을 정벌하는 기간 동안 팔기제는 점차 전문적이고 관료적인 기관으로 변모하였고, 그동안 팔기군은 녹영과 함께 청나라의 정규군으로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19세기 서양 열강이 침공하는 아편 전쟁, 잇달은 태평천국의 난을 거치면서 팔기군의 세력은 약화되고 대신 이홍장 세력이 실권을 잡았다. 청조가 붕괴한 1912년 들어서는 명목상으로만 존재하게 되었으며, 마지막 황제가 자금성에서 떠났던 1924년까지 기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