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정사각뿔 꼴의 고대 유적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피라미드(pyramid)는 일반적으로 정사각뿔 꼴의 고대 유적을 가리킨다. 피라미드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피라미스인데, 이집트인은 “메르라”라고 불렀다고 한다.
고대 중국,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앙아메리카 등 많은 문명권에서 피라미드 형태의 유적을 만들었다. 그중에서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특히 기자의 3대 피라미드가 가장 유명하다.
한때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무덤이 아니라는 설도 있었으나, 대체로 국왕, 왕비 등 왕족의 무덤으로 쓰였을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왕의 피라미드에서 미라가 여럿 발굴되었을 뿐 아니라 미라가 안치되었던 방에서 매장에 필요한 석관, 항아리, 황금 제품 등이 출토되었고, 부조나 비문 등에서 제사에 쓰였던 글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1]
수단에도 피라미드가 존재하는데 현재의 수단 북부인 누비아 지방을 근거지로 삼았던 쿠시 왕국 시절에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 지은 것으로 이집트의 장례문화가 바뀐 후에도 꾸준히 피라미드를 건축했다. 수단의 누비아 피라미드가 모여있는 장소는 총 5곳으로 엘-쿠루(이집트 제25왕조를 창건한 쿠시 왕국 나파타 왕조 시절의 왕실 묘지), 누리(엘-쿠루가 가득 차서 더 이상 피라미드를 지을 수 없게 되자 타하르카가 대체 부지로 조성한 곳), 메로웨(쿠시 왕국 후기의 메로웨 왕조 시기에 조성되었다), 제벨 바르칼(이집트 신왕국 파라오인 투트모세 3세가 누비아를 정복한 뒤 이집트 최남부 거점으로 건설한 요새 도시로 이집트 제3중간기 때 쿠시 왕국이 점령하여 수도로 삼은 뒤 꾸준히 궁전과 신전의 증개축을 행했다), 세데인가(2018년에 새로 발견된 곳으로 앞의 피라미드들과 달리 부유한 일반 시민들을 피라미드에 안치했다는 게 차이점이며 이집트의 영향을 매우 짙게 받은 흔적이 남아있다)이 존재한다.
피라미드에 대해 남아있는 최고의 기록은 고대 그리스 역사가인 헤로도토스의 《역사》2권에 있다. 거기에는 '기자의 대(大)피라미드에 관하여 10만 명이 3개월 교대로 20년에 걸쳐 지었다'고 기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