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골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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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골드만(영어: Emma Goldman, 1869년 6월 27일 ~ 1940년 5월 14일)은 아나키스트 정치 활동가이자 작가였다. 그녀는 20세기의 전반기에 걸쳐 북미와 유럽의 아나키스트 정치 철학의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다.
골드만은 러시아 제국의 코브노(Kovno, 오늘날 리투아니아의 카우나스)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고 1885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1] 헤이마켓 사건을 계기로 골드만은 아나키즘에 경도 되었고, 아나키즘 철학에 관한 연설가이자 작가가 되었으며, 여성의 권리와 사회 이슈 등에 이야기하며 수많은 군중을 이끌었다.[1] 그녀와 또 다른 아나키스트 작가인 알렉산더 버크먼은 그녀의 연인이자 오랜 친구였는데 1892년에 산업 자본가 헨리 클레이 프릭(Henry Clay Frick)을 행위의 프로파간다로써 암살시도 했었다. 프릭은 암살시도에서 살아남았고, 버크만은 22년형을 선고받게 된다. 이어서 골드만은 폭동 선동과 불법적인 피임 정보 유포 혐의로 몇차례 옥살이를 하게 된다. 1906년 골드만은 아나키스트 신문인 Mother Earth를 창립한다.
1917년 골드만과 버크만은 징병 거부를 목적으로 사람들에게 신분등록을 거부할 것을 선동하는 음모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 받는다. 감옥에서 출소한 이후 다른 248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러시아로 추방당한다. 그들은 처음엔 볼셰비키의 10월 혁명을 지지했지만, 크론슈타트 사건이 발생한 이후 그들의 입장을 바꿨으며, 독립적인 목소리를 폭력으로 억누르는 소비에트 정부를 비판했다. 그녀는 러시아를 떠났고, 이 경험을 토대로 1923년에 My Disillusionment in Russia(러시아에서의 나의 환멸) 라는 글을 작성한다. 이후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지에서 거주하는 동안 Living My Life 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작성한다. 이 글은 1931년과 1935년에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서 출판되었다. 스페인 내전의 발발 이후 스페인으로 향해서 그곳에서 벌어지는 아나키스트 혁명과 투쟁을 지지했다. 이후 골드만은 1940년 5월 14일, 70세의 나이로 캐나다에서 사망한다.
그녀의 생애동안 골드만은 지지자들에 의해 자유사상가이자 용맹한 여성으로 칭송되었으며, 비판자들에게는 정치적 살인과 폭력 혁명의 옹호자로서 비방받았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