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힌골 전투
1939년 5월부터 8월까지 몽골과 만주국의 국경 지대인 할하강 유역에서 소련군·몽골군과 관동군·만주국군 간의 전투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할힌골 전투(몽골어: Халхын голын байлдаан, 러시아어: бои на реке Халхин-Гол, 일본어: ノモンハン事件 노몬한 지켄[*], 영어: Battles of Khalkhin Gol)는 1939년 5월부터 8월까지 몽골과 만주국의 국경 지대인 할하강 유역에서 소련군·몽골군과 관동군·만주국군 간의 국경 분쟁으로부터 시작된 전투를 말한다.
할힌골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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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일본 국경 분쟁의 일부 | |||||||
소련군 BA-10 장갑차 1대가 버려져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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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소련 몽골 인민공화국 |
일본 제국 만주국 | ||||||
지휘관 | |||||||
게오르기 주코프 |
고마쓰바라 미치타로 | ||||||
병력 | |||||||
61,860–73,961명 전차 498–550대 항공기 900대 이상 장갑차 385–450대 대포 500–634여 문 |
30,000–38,000명 전차 73대 탱켓 64대 항공기 400대 대포 200-300여 문 | ||||||
피해 규모 | |||||||
9,703명 전사 15,952명 부상 2,225명 병사 몽골어 사상자 556[1]–990명[2] |
8,440명 전사 |
관동군이 만주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동북부 외몽골과 인접한 할하 강변 노몬한 부근은 국경선이 확실치 않아 잦은 분쟁이 일어났다. 1939년 5월 11일 몽골군 기병 70 ~ 90명이 할하강을 건너오자 일본군은 이를 불법 월경으로 간주하였고, 이는 양측 간의 선전포고 없는 전쟁으로까지 번졌다. 전투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먼저 5월에는 제한된 병력들이 교전하였으며 일본군이 패배했다. 7월에 펼쳐진 일본군의 공세는 실패로 끝났으며, 마지막으로 8월에 소련군이 공세를 펼치면서 분쟁 지역을 모두 점령하고 관동군에게 타격을 입히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소련군에게 참패하여 소련이 요구하는 대로 할하강을 경계로 만주국과 몽골의 국경선이 확정되었다. 또한 양국은 소련-일본 불가침 조약을 맺게 되었고, 바르바로사 작전 이후 독일이 소련의 극동을 공격해 달라는 요청을 계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끝까지 소련과 맺은 조약을 지킨 것도 바로 이 전투의 패배의 영향이 컸다. 이 전투 이후 일본이 북부로의 팽창보다 남동아시아로의 확장을 추구하게 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편 이 전투는 이후 제2차 세계대전(대조국전쟁)에서의 전공으로 유명해진 게오르기 주코프의 첫 승리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