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크 게이블
미국의 배우 (1901–1960)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윌리엄 클라크 게이블(영어: William Clark Gable, 1901년 2월 1일 ~ 1960년 11월 16일)은 미국 배우이다. 전성기 때 "할리우드의 제왕"(The King of Hollywood)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1] 1999년에 미국 영화 연구소는 게이블을 "현시대의 가장 위대한 남성 스타"에서 7위로 선정하였다.[2] 1917년부터 종종 무성영화의 단역배우로 활동하다가 1930년부터 본격적으로 배우로 활동하였으며, 1939년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960년대, 그의 사후 대한민국 국내에 소개되었다. 이 작품에서 그는 미국 남북전쟁의 동란기를 꿋꿋하게 버티는 강인한 사나이 역할로 인상을 남겼다.
클라크 게이블 Clark Gabl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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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1년 2월 1일(1901-02-01) 미국 오하이오주 카디즈 |
사망 | 1960년 11월 16일(1960-11-16)(59세)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웨스트할리우드 |
부모 | 윌리엄 헨리 게이블 (부) 아들린 허셸먼 (모) 제니 던랩 (계모) |
배우자 | 조지핀 딜런 (1924–1930; 이혼) 리아 랭햄 (1931–1939; 이혼) 캐럴 럼바드 (1939–1942; 사별) 실비아 애슐리 (1949–1952; 이혼) 케이 윌리엄스 (1955–1960; 그의 죽음) |
자녀 | 주디 루이스 (딸) 윌리엄 클라크 게이블 (아들) |
서명 |
생후 7개월 만에 어머니를 잃고 두살 때 아버지의 재혼으로 계모 밑에서 구박받으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야간반 재학 중 밴드부원을 하였고, 동시에 고교 재학 중 1917년 단역배우로 출연하였다. 1920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백화점 점원, 농부, 단역 배우, 일용직 막노동자, 은행의 계약직 사무원, 신문 보급소 사환, 전화 설치공, 석유 시추 노동자, 외무사원, 일용직 노동자, 타이어 공장 노동자, 플라스틱 공장의 노동자, 농장 점원, 목재 벌채 인부 일, 상점 점원, 식당과 레스토랑의 종업원 등을 전전하다가 1923년 단역배우와 엑스트라 일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배우, 할리우드의 영화배우가 되었다.
배우 겸 연출가 조지핀 딜런의 연기지도를 받아 1928년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출연하여 이름을 알렸고, 그의 팬이었던 17세 연상의 부유한 리어 랭험의 도움과 인맥으로 여러 영화에 캐스팅되었다. 1934년의 "어느날 밤에 생긴 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고 이후에도 여러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조연상의 후보의 물망에 올랐다. 훤칠한 키와 말끔한 외모, 부드러운 면과 강인하고 거친 면모를 함께 갖춘데다가 넉살 좋은 성격으로 여성팬은 물론이고 남성팬들에게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여성관객들과 평론가 사이에서는 성적 매력을 가진 남자배우 중의 하나로 손꼽혔다. 세번째 부인이었던 배우 캐롤 롬바드가 1942년 1월 라스베가스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미 공군에 장교로 입대하여 참전, 항공 훈장을 받고 소령까지 진급하였다. 그는 세번째 부인 캐롤의 흔적을 찾고자 사고현장을 다년간 수색한 끝에 캐롤이 착용하던 스카프 조각을 찾아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