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마치 운동
튀르크족이 러시아 제국과 소련에 대해서 반기를 든 운동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바스마치 운동(러시아어: Басма́чество 바스마체스트보[*]) 또는 바스마치 봉기는 중앙아시아의 튀르크족이 러시아 제국과 소련에 대해서 반기를 든 운동이다.
바스마치 운동 | |||||||
---|---|---|---|---|---|---|---|
제1차 세계 대전 및 러시아 내전의 일부 | |||||||
1920년 소련 적군과의 전투 중 부하라에 발생한 화재 | |||||||
| |||||||
교전국 | |||||||
소련 |
바스마치 운동군 사카우파 (1929) | ||||||
지휘관 | |||||||
미하일 프룬제 야사베크 모누예프 |
엔베르 파샤 † 하비부라쉬 칼라카니 † | ||||||
병력 | |||||||
120,000명 ~ 160,000명[4] | 약 30,000명 | ||||||
피해 규모 | |||||||
공식적으로 516명 사망, 925명 부상[5] | 모름 |
이 운동의 근원은 1916년 제1차 세계 대전 도중 러시아 제국의 무슬림 징병으로 인해 반러시아 감정이 폭발하면서 발생한 1916년 중앙아시아 폭력사태로부터 시작되었다.[6] 한달 후 10월 혁명이 일어나면서 이 폭력사태는 투르키스탄 전역으로 확대되었고, 특히 페르가나 분지를 중심으로 하여 봉기로 발전하였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수년동안 게릴라전 및 재래식 야전이 일어났으며, 그동안 반소련 감정과 반러시아 감정이 증가했다.
1920년대 붉은 군대의 주요 전역 승리와 이슬람에게 경제적 양보를 하는 정책으로 바스마치 운동 및 군사행동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7] 소련의 집단화 정책에 대한 반발로 군사 항쟁을 다시 시작했기도 했지만,[8] 중앙아시아에 대한 소련화 작업이 마무리되면서 바스마치 운동은 끝나게 되었다.